2012년 4월 29일 일요일

4.11 총선결과와 교육운동의 과제

김태정(교육혁명공동행동 정책위원)

1. 들어가며


19대 총선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야권의 승리를 예상 혹은 기대했던 사람들은 이른바 ‘멘탈붕괴’를 호소하고 있고, 심지어 12월 대선에서도 같은 결과가 되풀이 될 것이라는 비관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야권 실패의 원인으로 이른바 ‘김용민 막말파문’ 등의 민주통합당의 오만과 선거 전략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른바 ‘여촌야도’의 현상을 두고 ‘국민들의 후진적인 정치의식의 결과’라며 자괴적인 한탄도 끊이질 않는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승리는 이른바 ‘반MB! 묻지마! 야권연대’가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우리 교육운동진영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른바 민주-진보 진영의 승리를 기대 혹은 예상해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럴만도 한 것이 이명박정부의 경쟁교육정책에 대해 상당수의 국민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이 각종 지표로 확인되어왔으며, 무상급식논란속에서도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씨가 당선된 경험, 등록금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투쟁 등은 이 같은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다. 이제 우리는 왜 이런 결과나 나타났는가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동시에 향후 어떠한 실천을 할 것인가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2. 4. 11 총선 결과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4.11 총선결과를 확인해보자. 전체 300석 중 새누리당이 152석(지역구 127+비례대표 25), 민주통합당 127석(지역구 106+비례대표 21), 통합진보당 13석(지역구 7+비례대표 6), 자유선진당 5석(지역구 3+비례대표 2), 무소속 3석이다. 누가 보아도 이번 선거는 새누리당의 승리이며, 이른바 야권연대의 승리 즉,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과반수를 얻을 것이라는 예측은 무참히 빗나갔다.
물론 여전히 ‘아전인수’격의 해석이 난무한다. 예를 들어 “수도권에서는 야권이 우세했음으로 결코 패배가 아니다”라는 해석,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야권연대가 승리한 것”이라는 해석, 심지어 “새누리당은 18대의 162석에서 10석이 줄어들었지만, 민주통합당은 88석에서 127석으로 통합진보당은 7석에서 13석으로 약진했다”는 식의 해석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해석도 새누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수를 넘었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2-1. 새누리당의 승리 요인은?

그러면 왜 새누리당이 이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이른바 선거공학에 입각한 각종해석들은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즉, 한국사회 정치지형의 특징상 처음부터 보수세력에게 유리한 선거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촌야도’로 현상에서처럼 한국의 정치지형은 이른바 보수적인 유권자층이 고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통계적으로 최소 30%이상의 고정적인 투표율과 최대 50%에 근접하는 지지율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보수세력의 집권을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대 선거 득표율을 통해서도 발견되는데, 보수세력의 후보들은 대체로 44%~48% 사이에서 고른 득표율을 보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1144만3297표(46.58%), 민주당 노무현 1201만4277표(48.91%), 민주노동당 권영길 95만7148표(3.89%)를 얻었고, 2007년 17대 대선 때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617만4681표(26.14%), 한나라당 이명박 1149만2389표(48.67%), 민주노동당 권영길 71만2121표(3.01%)를 얻었다.
지방선거에서도 그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2010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208만6127표(47.43%), 민주당 한명숙 205만9715(46.83%), 진보신당 노회찬 14만3459표(3.26%)를 얻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김문수 227만1492표(52.20%), 국민참여당 유시민 207만9892표(47.79%)를 얻었다. 또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때, 야권단일후보인 무소속 박원순 215만8476표(53.40%), 한나라당 나경원 186만7880표(46.21%)였다. 즉, 보수세력은 고정적인 유효투표수를 확보하고 있기에 이른바 젊은층을 포함한 유권자들의 대대적인 참여, 보수세력의 분열 등의 특별한 요인이 작동하지 않는 한 이변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19대 총선에서도 투표율은 54.3%로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 투표율 54.5%와 비슷한 수치를 기록하였다. 이는 18대 총선 투표율 46.1%에 비해 8.2% 포인트 높아진 수치지만, 57.2%를 기록한 지난 16대 총선에 비해서는 2.9% 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역대 총선 중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여기에 영남지역 의석(67석)이 호남(30석)보다 37석이나 많아 여야 간 박빙 상황에서는 새누리당이 30석 차로 승리할 것이라는 일각의 예측이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보수세력’에 대한 고정적인 지지를 보이는 이들은 누구이고, 그들의 심리적 연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보수세력을 지지하는 자들은 기득권세력이다.
노동자 민중들이 이른바 계급배반투표를 하는 것에 비해 기득권세력은 철저히 계급투표를 그것도 아주 놓은 참여율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이번 선거에서도 여지없이 확인되고 있으며, 부자들이 밀집해 사는 곳의 경우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이번 총선에서 압구정동과 도곡2동, 대치1동 지역은 70%가 넘게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심지어 타워팰리스가 있는 도곡2동 제3투표소와 제4투표소에서 주민의 88%가 새누리당후보를 지지하였다.

둘째, 보수세력을 지지하는 자들은 상대적으로 고령층이거나 저학력층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개발독재시절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대들로 이는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에 대한 영남권 50대 이상에서의 열광적인 지지는 70년대 고도성장의 시기를 겪은 ‘중고령 저학력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학력과 정치의식의 관계는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른바 '표준 시민'으로 불리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20대에서 40대의 시민, 특히 80년대 이후 대학을 나왔거나, 2008년 촛불항쟁에 참여했거나, SNS를 통해 활발히 소통하는 이들의 정치의식과 박근혜를 지지하는 지방의 50대이상의 세대와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셋째, 보수세력을 지지하는 자들은 심리적으로 이른바 ‘닻내림 효과’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대니얼 캐너먼’의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인지적 착각’을 겪는데, 그것은 기존에 익숙했던 것을 무의식적으로 선호하거나, 기존의 것이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이고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을 주저하는 편향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누리당은 처음부터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야권은 이 ‘닻내림 효과’를 극복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넷째, 보수세력에 대한 지지는 지역발전이데올로기에 포섭된 결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선거에서 강원지역의 경우 새누리당이 싹쓸이를 하였고, 충청지역에서도 승리하였는데, 이는 지역발전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지역발전의 직접적인 수혜자는 지역유지 등 기득권세력에 불과하며, 이들이 고정적인 표를 동원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과적으로 선거는 지역차원의 지배권력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2-2. 야권의 패배 원인은? 한편 야권의 실패원인은 무엇으로 진단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한 정치평론가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야권이 오만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들이 제출한 MB정권심판론을 지나치게 확신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느 평론가는 “MB정권심판은 야당 정치인 자신의 이야기일 뿐 실제 선거 현장에서는 유권자들을 설득하기에 한계가 있으며, 자신의 사정을 유권자에게 강요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야권의 오만은 이른바 공천심사논란과 후보자격논란과도 연관되는데 이를 둘러싼 논란은 그치지 않았으며, 이는 새누리당과의 변별성을 갖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을 지경이었다. 뿐만 아니다. 진보를 자임한 통합진보당의 경우 야권단일 후보 경선과정에서 드러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여론조작 사건과 사퇴를 둘러싼 이른바 ‘당권파’의 태도는 상당수 젊은층과 노동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고 있다.

둘째, 야권이 대중을 설득할 의제가 부재하였다는 것이다.
야권은 이번 선거에서 정권심판 외에 대중에게 이렇다 할 전망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선거 초기 주요 공약이었던 반값등록금, 경제민주화 등은 새누리당과 큰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한미FTA를 비롯한 주요쟁점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 흐름속에서 묻혀버리면서 과거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을 이탈시키기도 하였다. 또, 야권은 사회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의 전망을 갖지 못한 수준에서의 복지정책은 새누리당과 그 정도에서 차이만 있는 정도로 대중에게 인식되고 말았다. 또 야권단일후보의 정책이라는 것이 새누리당후보와 질적 차별성도 없어 유권자들을 실망시키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교육분야의 경우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 대상의 우등생 공부방’ 설치, ‘지역내 자율형 사립고 설립’ 등을 내건 후보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이번 선거는 ‘사찰공방’과 ‘막말논란’속에서 대중의 삶을 바꿀 정책의제는 실종된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선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른바 노동자밀집 거주지역에서 조차 이른바 진보를 자임하는 정당들이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반MB! 묻지마! 야권연대’를 맹신하는 일부의 평론가들은 야권연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불완전한 야권연대가 문제였다면서 일부 선거구에서의 후보단일화가 되지 않는 것을 패배의 원인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형식에 있어서는 야권단일후보가 되었음에도 울산, 창원, 거제, 인천 등 대표적인 노동자도시에서의 패배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20-30대의 투표율이 저조한 것을 문제 삼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진보진영이 이른바 노동자도시에서 패배한 것은 이른바 ‘반MB! 묻지마! 야권연대’ 그 자체로부터 연원한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 출범을 둘러싼 논란에서부터, 민주노총의 총선방침 결정과정에서의 파행은 물론이고 선거과정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통합당 대표와 함께 민주당 지지 유세를 하는 것이나 민주통합당과 정책협약을 한 것 등등의 사건들은 민주노조의 근간을 근본에서부터 허물었을 뿐만 아니라 사태를 돌이킬 수 있는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현장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법과 파견법, 비정규직법을 만들고 통과시킨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후신들과 하나의 당으로 통합을 하거나 야권단일후보이니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이는 각종 FTA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는 다수 농민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야권연대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재는 진보세력이 미약하니 민주통합당과 연대해서라도 새누리당의 재집권이라는 최악을 피해보자고 할지 모른다. 또 노동자 민중들이 투표에서 반드시 진보세력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보수세력을 거의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고정적인 비율로 존재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비록 자유주의세력이라 할지라도 연대는 불가피 한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물론 즉자적인 계급과 대자적인 계급을 구분해야 한다. 또 노동자 민중의 정치의식은 불균등하며, 심지어 이른바 ‘계급에 반하는 투표’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복합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말하는 진보적인 세상이 사회적 생산의 담지자이자 보편적 다수자인 노동자 민중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불균등성은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지 안주해야 할 상태, 불가항력적인 그 무엇이 될 수 없다. 더욱 문제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가 선거라는 공간으로 제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재차 확인된 것이지만 선거는 모든 노동자 민중의 의제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말았다. 그렇게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의 문제, 대중의 보편적인 권리를 둘러싼 투쟁들은 제약 당했고, 김용민 막말 논란과 같은 소모적인 논쟁만 난무하는 가운데, 이제는 이명박 같은 ‘나쁜자본가’가 아니라 ‘착한 자본가’인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모셔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면서 또다시 대중의 정치의식을 퇴행적으로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반MB 묻지마 야권연대’로 왜곡시켜 온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3. 교육운동진영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이번 총선에서 여당세력이 승리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교육시장화의 그 종착점을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보일 것이며, 반면 이른바 야권이 승리한다면 이명박 정부식의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육정책은 제동을 걸리게 될 것이며, 나아가 이른바 진보진영의 의회진출이 늘어난다면 신자유주의 교육시장화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의 목소리가 더욱 확장될 것으로 예견한바 있다.
그러나 4.11 총선은 교육운동진영의 대다수 사람들의 주관적 바램과는 다르게 여당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과 과제를 주고 있다.

첫째, ‘반MB! 묻지마! 야권연대’로 교육공공성을 실현한다는 것은 요원한 꿈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교육운동진영의 일각에서는 MB심판을 내걸고 야권연대로 총선에서 승리하면 오는 6월 국회에서 각종의 개혁입법을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장미 빛 꿈에 젖어있던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실제 그렇게 사업계획을 제출한 단체들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이 불가능한 환상에 불과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또 반MB! MB심판!이라는 구호는 아이러니 하게도 한편으로는 진보진영을 포박하는 자충수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박근혜로 상징되는 새누리당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구실이 되었다. 즉, MB심판을 한다며 자칭 진보진영이 신자유주의개혁분파와 통합 혹은 연대를 하는 순간 자신들의 정체성은 물론 그를 지지하던 대중들을 혼돈속으로 내몰게 된 것이다. 반면 MB심판은 주도면밀하게 MB와의 차별성을 주장한 박근혜를 부각시키는 역효과를 만들면서 그 뒤로 MB가 숨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다.
‘MB심판론’의 결정적인 한계는 대중의 요구와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나쁜MB’를 심판하는 것일까?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더욱 커진 빈부격차, 나날이 고통스러운 불평등한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전망을 이른바 ‘묻지마 야권연대’에서 결코 발견하고 있지 못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중들은 일부 정치평론가가 정치인들의 주장처럼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민주통합당을 향해 “너희가 추진한 한미FTA 너희가 추진한 제주해군기지 아니더냐?” 질타하지 않더라도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겪은 대중들은 야당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즉, 일부 노무현지지자들이나 나꼼수류의 주관적 바램처럼 대중들은 그저 야권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번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이른바 진보를 자임한 사람들이 보여준 행태에 대해서도 이미 일정한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바로 그것이 온갖 유명인사들과 연예인들까지 다 동원되어 투표를 독려했음에도 결국 54.3%에 투표율이 그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때문에 이런 점에서 이후에도 계속 ‘반MB! 묻지마! 야권연대’로 정세를 돌파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거의 재앙이 될 것이다.

둘째, 대중의 직접행동을 조직하는 실천에 돌입해야 한다.
만일 누군가 제도권정당에 도움을 얻어서 혹은 야권세력이 의회에서 다수가 되면 대중의 보편적인 권리인 교육권, 교육의 공공성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노동자 민중을 단지 표를 던지는 대상으로 사고하는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물론 제도적 영역안에서의 변화 역시 중요하다. 특히 법제도적인 변화를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들은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제도적 변화는 결코 그 안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과 제도는 결국 사회적 힘의 관계, 대립하고 갈등하는 계급간의 충돌의 정도를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자 민중들의 힘이 결집되지 않고, 그것이 법과 제도의 변화를 추동할 정도의 강력하게 발휘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조그만 개혁적 조치도 얻을 수 없다.
더욱이 부분적이지만 제도적 영역에 진보를 자임한 세력들이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진보진영의 전체의 과제는 단지 현재의 그 영역에 더 많은 사람들을 진입시키는 것으로 실천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제도적 영역에 진출한 세력의 과제는 제도밖에서의 대중들의 직접행동을 확산시킬 수 있는 정치폭로, 지배계급과의 정치적 접점의 형성, 대중과의 결합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제도 밖에서는 목적의식적이고 지속적인 대중행동을 촉발시키고 조직하는 것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컨대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 안과 밖의 결합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입각할 때, 교육운동진영의 과제는 제도권정당에게 자신의 의제를 받아들여주기를 청원해온 기존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지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주요 현안쟁점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실천이다. 예를 들어 일제고사의 조종을 울리기 위한 투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투쟁, 대학등록금 문제해결과 대학구조조정에 맞서는 투쟁 등등 대중의 직접적인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또한 교육문제가 단지 교사, 학부모,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절대다수의 보편적 권리라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과 교육의제가 결합될 수 있는 다양한 실천들을 전개해야 한다.

셋째,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교육공공성실현의 전망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선거가 갖는 본질적인 성격상 선거자체만으로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라는 계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난 것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교육운동진영은 보편적 권리로서의 교육권, 교육공공성의 실현의 전망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또 선거공학차원에서도 비록 보수세력에게 ‘공크리트 같이 강고한 지지율’을 보이는 유권자들일지라도, 바로 그들 또한 설득하겠다는 각오를 갖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대안적 사회세력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12월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지는 지금부터의 실천에 달려있다. 사회적 격변, 대중의 직접적인 행동을 만드는 동인은 결코 경제적인 궁핍이나, 상대적인 박탈감,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통치방식 그 자체가 아니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현재의 상황보다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확신과 전망이다. 바로 그것을 제시하고 자신의 실천으로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201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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